[단독]수능 변수 된 통합사회·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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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高1 새과목 교사연수자료 보니

《내년 고1 학생부터 문·이과와 관계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과목을 필수로 배우게 된다. 통합사회는 종전의 사회탐구(일반사회·지리·윤리·역사) 4과목, 통합과학은 과학탐구(물리·생물·지구과학·화학) 4과목의 핵심 개념을 합친 과목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문·이과 통합 취지에 따라 새로 생긴 이 과목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변수로 부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내용과 난이도에 궁금증과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본보가 교육부의 교사연수 자료를 확보해 이 과목들의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만만치 않았다.》
 


 
▼ “통합사회-과학, 수업-평가 만만찮네” ▼

교육부가 전국의 사회·과학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최근까지 진행해온 ‘통합사회’ 및 ‘통합과학’ 관련 교사연수 자료를 동아일보가 14일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내년 고교 1학년부터 배울 이 두 과목의 학습량이 상당하고 새 교과의 현장 적용 과정에서 혼란도 적잖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우선 △두 과목이 요구하는 ‘융합적 사고’의 난도가 상당한 데다 △수업 중 활동 평가에서는 활발한 참여와 열린 추론을 제시한 학생이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내신 지필고사에서는 정해진 답을 골라야 하는 등 평가 기준이 제각각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또 △특정 과목을 전공한 교사 한 명이 4과목이 융합된 교과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이 때문에 본래 취지와 달리 통합교과를 ‘쪼개기 수업’하거나 기존 방식대로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점 등이 문제로 꼽혔다.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가 교과 간 장벽을 허문 형태로 출제될 경우 수험생들이 당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쉬운 개념 기반으로 한 융합 사고 요구

교육부의 교사연수 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통합사회 과목은 △삶의 이해와 환경 △인간과 공동체 △사회 변화와 공존 등 3개 영역의 9개 핵심 개념으로 구성된다. 기존의 일반사회·지리·윤리·역사 과목의 관련 지식을 주제에 따라 묶어 융합했다.

중학교의 물리·생물·지구과학·화학에 해당하는 내용은 통합과학에서 △물질과 규칙성 △시스템과 상호작용 △변화와 다양성 △환경과 에너지 등 4개 영역에 걸쳐 9개 핵심 개념으로 재구성됐다.

각 주제를 이루는 핵심 개념은 모두 중학교 과정에서 한 번씩은 다룬 내용이다. 통합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토의·토론학습 △프로젝트 학습 △탐구활동 등이 중시된다는 점 △또 이 과정에서 학생 개인과 개별 팀의 지적 수준과 참여도, 융·복합적 사고를 평가해 학생부에 기록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예컨대 통합사회의 ‘행복’ 단원에서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놓고 △궁전에서 세상의 불행을 모르고 살던 시절의 왕자들은 진정 행복했을까 △행복한 사람은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등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통합과학의 ‘물질과 규칙성’ 단원에서 ‘우주’를 배울 때는 △허블의 관측(팽창하는 우주)이 빅뱅 우주론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빅뱅 우주론의 확립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해 발표하기 등이 활동 주제로 제시된다.

활발한 지식 공유와 의견 개진을 한 학생들이 높은 학생부 평가를 받는 구조라 핵심 개념을 완전히 소화해 그 이상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이 요구된다. 단순한 암기에 익숙한 학생들은 상당히 어렵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서울 지역 일반고 윤리교사 권모 씨는 “제일 큰 문제는 평가”라며 “아무리 ‘열린’ 수업을 했어도 내신 필기시험은 교과서에 적힌 ‘닫힌’ 답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게 딜레마”라고 말했다.

○ 융합 수업 두려운 교사들

교사 1명이 4개 과목이 결합된 ‘통합교과’를 가르쳐야 하는 두 과목의 특성상 수업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일반고 이모 교사(일반사회)는 “내 전공이 아닌 내용을 틀리게 가르치진 않을지 몹시 부담된다”며 “통합교과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현장에선 각 단원을 소주제로 쪼개 기존 과목처럼 나눠 가르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일반사회 교사 김모 씨는 “전공인 일반사회야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알지만 지리나 윤리 같은 다른 과목은 중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며 “교육과정이 바뀌었다고 수업도 정말 그렇게 바로 바뀌리라는 건 교육부의 희망사항일 뿐이고, 많은 경우 교사들은 위험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기 때문에 수업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 출제 검토에 다수 참여한 구현고 권장희 교사는 “보면 볼수록 수능 문제 출제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4개 교과 교사와 교수들이 문제를 출제하는 과정에서 합의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장이 상당히 준비됐다’고 자평한 교육부 설명과 크게 다른 평가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전국의 교사들에게 연수를 실시했다”며 “연수를 마친 교사들은 융합교육 취지에 공감하고 자신감도 크게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통합사회#통합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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